신기루가 된 전국 GTX와 숨 막힌 부산 하늘길… 지역 인프라의 딜레마
다가오는 6·3 대선을 앞두고 주요 후보들이 앞다퉈 ‘교통혁명’을 부르짖으며 광역급행철도(GTX)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 모두 지역균형발전이라는 명분 아래 GTX를 비수도권까지 뻗게 하겠다는 구상을 내놨다. 김 후보는 아예 5대 광역권을 아우르는 전국 단위 설치를 약속했다. 임기 내 기존 A~C 노선 개통과 D~F 노선 착공은 물론, 인천에서 서울 강남을 거쳐 경기 포천까지 잇는 G노선 신설, 나아가 부산·울산·경남 등 각 지방 거점별 GTX 설치까지 공언했다. 이 후보 역시 기존 노선의 차질 없는 진행과 함께, GTX B·D 노선을 강원 춘천·원주, 그리고 충청권 일부까지 연장하는 방안을 꺼내 들며 맞불을 놨다.
천문학적 비용과 ‘텅 빈’ 수요의 괴리
그림은 웅장하지만, 늘 그렇듯 문제는 돈과 수요다. 노선 하나를 까는 데만 4조에서 5조 원이라는 천문학적인 혈세가 투입된다. 이 후보는 정부 지출 구조조정을, 김 후보는 민간 투자 유치를 해결책으로 꼽았지만, 당장 경제성이 가장 높다던 A노선조차 일부 구간만 찔끔 개통했을 뿐이다. B와 C노선은 작년 초 착공식을 열어놓고도 아직 제대로 된 삽조차 뜨지 못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텅 빈 수요다. 한국교통연구원 설문에 따르면, 교통전문가 대다수가 광역급행철도 추진의 가장 큰 걸림돌로 ‘지방의 절대적인 철도 수요 부족’을 지적했다. 인구도 적고 도심 밀집도마저 낮은 비수도권에 맹목적으로 고속 철도를 깔겠다는 발상은 전형적인 예산 낭비라는 것이다. 김훈배 공공교통네트워크 정책위원의 지적처럼, 경제성도 미달하는 노선을 남발하기보다는 당장 중앙정부 권한으로 K패스 적용 범위를 무궁화호까지 넓혀 지역 주민들의 실질적인 철도 혜택을 늘리는 것이 훨씬 피부에 와닿는 정책일 수 있다.
표류하는 철도 공약 이면의 진짜 병목현상, 부산
표심을 겨냥한 ‘빈 수레’ 공약들이 텅 빈 지방의 지도를 어지럽히는 사이, 정작 폭발하는 수요를 감당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지역도 있다. 글로벌 관광 도시로 도약하려는 부산이 겪고 있는 뼈아픈 인프라 딜레마가 그 방증이다.
최근 다변화된 외국인 관광객을 등에 업고 2028년까지 연간 500만 명의 해외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야심 찬 목표를 세웠지만, 정작 부산으로 들어오는 직항로가 턱없이 부족하다. 올 1분기만 해도 타 도시를 경유해 부산을 찾은 외국인 비율(43.5%)이 김해공항을 통해 직접 입국한 비율(42.2%)을 훌쩍 앞질렀다. 특히 프랑스, 미국, 호주 등 비아시아권 서구 관광객이 전년 대비 많게는 165%까지 폭증하고 있음에도, 이들을 직접 실어 나를 장거리 노선이 없어 십중팔구는 서울이나 인천을 거쳐야만 부산 땅을 밟을 수 있는 기형적인 구조다.
포화 상태의 김해공항, 굳게 닫힌 장거리 하늘길
김해공항의 팍팍한 현실을 보면 왜 이런 병목현상이 생기는지 알 수 있다. 발리나 카자흐스탄 등 국제선 노선을 조금씩 늘려가고는 있지만, 여전히 인근 아시아 국가 단거리 위주로 편성되어 있다. 게다가 빽빽한 주거지와 찰떡같이 붙어있는 탓에 밤 11시부터 새벽 6시까지는 비행기가 뜨고 내리지도 못하는 얄궂은 ‘커퓨(야간비행통제)’에 묶여 있다. 새벽 5시 반으로 통제 시간을 조금 줄여보려던 시도마저 주민들의 강한 반발에 부딪혔고, 산악 지형이라는 태생적 한계 탓에 이미 2010년대에 수용 능력의 90%를 채워버린 상태다.
소음 피해와 지형적 제약을 덜어낼 가덕도 신공항 건립은 수십 년간 얄팍한 정치적 셈법과 타당성 논란에 휘말려 표류하다가 2021년에야 특별법 통과로 겨우 숨통이 트였다. 철도망 공약은 표가 된다며 막대한 예산을 들이밀면서, 정작 국가 제2의 도시가 세계로 뻗어나갈 핵심 관문은 지독하게 방치해 온 셈이다.
가덕도 개항 전까지 하늘과 바다를 잇는 ‘투트랙’ 전략
가덕도 신공항이 번듯하게 문을 열 때까지 마냥 손 놓고 있을 수만은 없다. 당장 눈앞의 꽉 막힌 접근성을 뚫어낼 단기 처방이 절실하다. 추승우 동의대 교수의 지적처럼, 현재 김해공항 국제선은 철저히 내국인의 해외여행 수요에 맞춰 국적기 위주로만 굴러가고 있다. 판을 흔들려면 해외 관광객을 부산으로 직접 실어 나를 수 있는 외국 항공사들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하늘길 확장이 더디다면 바닷길로 시선을 돌리는 것도 훌륭한 대안이다. 부산항을 모항으로 삼는 대형 크루즈선 유치에 공을 들인다면 한 번에 수천 명의 관광객을 쓸어 담을 수 있다. 신공항이 열리기 전까지 크루즈가 지역 관광 인프라를 지탱해 주고, 훗날 항공과 해양 인프라가 도쿄의 사례처럼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시너지를 낸다면 부산의 글로벌 경쟁력은 한층 단단해질 것이다. 막연하게 전국에 선을 긋는 장밋빛 도면보다, 지금 당장 지역이 숨 쉴 수 있는 직통로를 열어주는 것이 어쩌면 진짜 ‘균형발전’일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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