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축구의 두 얼굴: 벼랑 끝에서 날아오른 오현규, 그리고 도망치듯 떠난 홍명보
벨기에 무대를 누비는 오현규(24·KRC 헹크)가 극적인 극장골로 팀을 수렁에서 건져내며 유럽 무대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이라는 값진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반면, 2026 북중미 월드컵 조별리그 탈락의 멍에를 쓴 홍명보 전 국가대표팀 감독은 쫓기듯 미국행 비행기에 오르며 씁쓸한 뒷맛을 남겼다. 철저히 상반된 이 두 가지 현실이 현재 한국 축구가 직면한 씁쓸한 고차방정식이다.
막판 뒤집기의 정수, 해결사 오현규
15일 세게카 아레나에서 열린 2025-2026 주필러리그 18라운드 KVC 베스테를로와의 홈 경기는 헹크 입장에서 꽤나 답답하게 흘러갔다. 전반에 선제골을 헌납한 데다, 로빈 미리솔라의 슈팅마저 골대를 외면하는 등 지독히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벤치에서 상황을 주시하던 오현규는 후반 20분 단 하이만스와 교체되어 그라운드를 밟았다.
흐름이 요동친 건 후반 27분 상대 수비수 에민 바이람의 퇴장으로 헹크가 수적 우위를 쥐면서부터다. 파상공세가 이어졌고, 패색이 짙던 후반 49분 추가시간에 마침내 오현규의 발끝이 불을 뿜었다. 오른쪽 측면에서 낮게 깔려 들어온 크로스가 수비수를 맞고 흐르자, 동물적인 감각으로 쇄도해 오른발 피니시로 골망을 갈랐다. 귀중한 승점 1점을 지켜낸 이 동점골로 헹크는 승점 24(6승 6무 6패)를 기록하며 리그 16개 팀 중 7위에 안착했다.
이날 득점은 단순한 한 골 이상의 무게를 지닌다. 리그 6호 골(2도움)이자 UEFA 유로파리그 4골(예선 2경기 1골, 본선 6경기 3골)을 묶어 올 시즌 공식전 10호 골을 달성한 순간이기 때문이다. 셀틱(스코틀랜드)에서 헹크로 이적한 지난 시즌의 기록(27경기 7골 2도움)을 포함해 공식전 41경기 12골 3도움이라는 족적을 남기며, 그는 유럽 무대에서 두 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리는 쾌거를 이뤘다.
일본 감독의 씁쓸한 변호와 사령탑의 침묵
해외파 공격수가 낭보를 전하는 사이, 국가대표팀을 둘러싼 공기는 여전히 무겁고 차갑다. 흥미롭게도 월드컵 참사 이후 거센 후폭풍을 맞고 있는 홍명보 전 감독을 공개적으로 감싼 건 다름 아닌 숙적 일본의 모리야스 하지메 감독이었다.
수요일 도쿄에서 열린 귀국 기자회견에서 한국 취재진을 마주한 모리야스 감독은 묘한 여운을 남겼다. 한국의 내부 사정을 깊이 알진 못한다면서도, 오랜 라이벌이자 친구로서 홍 감독이 ‘한국 축구 역사상 최악의 감독’으로 낙인찍히는 것에 대한 짙은 아쉬움을 표했다. 결과가 모든 것을 말해주는 프로의 세계라지만, 그가 한국 축구를 위해 헌신하고 치열하게 싸웠던 과정 자체마저 매도당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모리야스는 언론이 긍정적인 면도 조명해 주길 바란다는 말로 동업자 정신을 발휘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홍 전 감독의 행보는 모리야스의 따뜻한 변호와는 궤를 달리한다. 빗발치는 비난 여론 속에 사퇴한 그는 귀국한 지 단 이틀 만에 인천공항을 통해 캘리포니아 로스앤젤레스로 떠났다. 표면적으론 휴식이라지만, 여론의 질타를 피해 도피성 출국을 감행했다는 인상을 지우기 어렵다.
출국장 앞에 선 그의 태도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앙금이 서려 있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고, 언젠가 그 이야기들이 밖으로 나올 때가 있을 것”이라며 은연중에 억울함을 내비쳤다. 선수단 내분설이나 보루시아 묀헨글라트바흐 소속 옌스 카스트로프의 규율 위반 의혹에 대해서는 “팀 내 분열은 없었다”며 단호히 선을 그었지만, 정치권에서 논의 중인 국회 청문회 출석 여부에 관해선 귀국 시점을 알 수 없다는 핑계로 명확한 답을 피한 채 훌쩍 떠나버렸다.
그라운드 위에서 오현규가 온몸으로 증명해 낸 치열함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컨트롤 타워가 무너져 내린 뒤 한국 축구의 풍경은 공허하기 짝이 없다. 밖에서의 진실 공방과 무책임한 뒷모습이 겹쳐지는 한, 타지에서 선수들이 쏘아 올리는 눈부신 성과들마저 어딘가 반쪽짜리 영광처럼 느껴질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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